[강창희*연금전문가]

노후의 세 가지 불안, 그리고 해답
노후에 가장 불안한 세 가지는요.
1️⃣ 돈,
2️⃣ 건강,
3️⃣ 외로움.

이 세 가지를 다 잡는 방법이 의외로 단순합니다.
“무언가 할 일이 있는 것.”
그게 돈이 되는 일이든, 사회공헌이든, 취미든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하루를 보낼 이유가 있는가’**입니다.
노후 불안을 푸는 가장 현실적인 해답은 돈이든 일이든, 나를 움직이게 하는 ‘소일거리’예요.
퇴직 후 인생, 생각보다 훨씬 길다
먼저 우리가 퇴직하고 나면, 그 퇴직 이후 인생이 얼마나 긴지부터 생각해봐야 합니다.
얼마 전 한 취업컨설팅 업체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40대 이상 직장인이 체감하는 평균 퇴직 연령은 51.6세랍니다.
공기업은 55세
중소기업은 51세
대기업은 49세
“주된 직장에서 60세까지 일한 사람은 8%뿐”이라는 통계도 있어요. 생각보다 훨씬 일찍 회사를 떠난다는 거죠.

그럼 이렇게 가정해봅시다.
퇴직 나이를 52세로 반올림, 평균수명 83세까지 산다고 하면,
퇴직 이후 31년이 남습니다.
현역 시절엔 하루가 너무 짧죠. 일해야지, 술자리도 가야지, 연애도 해야지…
“하루가 100시간이면 좋겠다.” 이런 생각, 다들 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막상 퇴직하고 나면요, 이놈의 시간이 안 갑니다. 잠자고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 다 빼도 하루에 최소 12시간이 남아요.
어느 재벌그룹에서 정년퇴직을 앞둔 직원 부부를 불러 교육을 시켰답니다.
강사가 이렇게 말했어요.
“다음 달부터 정년퇴직이죠? 그럼 그다음 날부터 하루, 일주일, 한 달 일과표를 예상해서 써보세요.”
남편은 막막해서 그냥 앉아 있었고, 아내는 종이를 받자마자 줄줄 써내려갔대요.
“아침에 일어나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계모임도 하고…”
그런데 남편은 열 시까지만 쓰고 멈췄대요. 더 쓸 게 없었답니다. 남자들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퇴직 후엔 하루에 최소 12시간이 남습니다.
그걸 365일로 곱하고, 다시 31년으로 곱하면 12만 4,465시간.
우리나라 직장인의 연평균 근로시간이 1,967시간이니까, 그걸로 나누면 약 63년이 된답니다.
즉, 퇴직 후 31년은 현역 시절 6년 넘게 일한 시간만큼 길다는 거예요.
100세까지 산다면, 그보다 훨씬 더 깁니다.
우리가 어릴 때 이런 말 자주 들었죠.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그런데 이제는 아닙니다. 앞으로 인생도 길고, 예술도 깁니다.
그러니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퇴직은 ‘끝’이 아니라, **‘인생 2막의 시작’**이에요.
자산과 연금의 현실 — 집 한 채만으론 불안하다
이제 돈 이야기로 넘어가 봅시다.
열심히 살았는데도 노후 자금이 부족한 사람이 많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나라에선 그런 사람이 70~80%쯤 될 거예요.
요즘 금리도 오르고, 물가도 오르고, 몇 억을 모으려 해도 은행에 넣으면 세금 떼고 남는 금리가 몇 푼 안 되죠.

통계청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50대 가구의 평균 총자산은 5억 1,000만 원입니다.
“지방 사는데 그렇게 많아?” 하실 수도 있지만, 서울·수도권의 비싼 집값이 포함된 평균치예요.
집값을 빼면, 사실 지방이 훨씬 나아요.
그런데 5억 1,000만 원 중엔 빚도 있습니다. 요즘 가계부채 때문에 뉴스도 난리잖아요.
부채가 9,900만 원, 그걸 빼면 순자산 4억 1,100만 원.
언뜻 들으면, “그래도 4억 있으면 먹고살만 하지 않나?” 싶죠?
그런데 문제는 그 4억 중 3억 5,700만 원이 지금 살고 있는 집값이에요. 그러면 남는 돈이 5,400만 원쯤 됩니다.
자, 이제 현실적으로 생각해봅시다.
그 돈으로 30년, 40년을 어떻게 삽니까?
주식이라도 해볼까? 하다가 다 잃을 수도 있고, 그렇다고 집을 팔자니… 그게 또 쉽지 않아요.

“집이 내 노후의 안전판이 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재작년 기준으로 빈집이 157만 채. 이게 다 시골이 아니라 도심 한복판에도 생기고 있어요.
그러니까, “집 한 채면 노후 괜찮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미래에 집값이 오를 거란 보장은 없어요.
신문이나 TV에서 “노후엔 10억이 필요하다”, “7억은 있어야 편하다” 이런 얘기 많이 하죠?
그런 기사 보면 어때요?
도움은커녕 더 초조해지고,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그런 불안한 마음을 노리는 사기가 늘어요.
부동산 기획사기, 투자 사기, ‘두 배로 불리는 법’ 같은 재테크 책들…
그런 게 다 거기서 나옵니다.
한 외국 언론인이 서울에서 근무하다 돌아가며 이런 말을 했대요.
“한국 사람들은 돈을 버는 법(입구관리)은 잘 아는데,
쓰는 법(출구관리)은 너무 서툴다.”
젊어서 돈을 버는 건 열심히 하는데, 나이 들어 ‘어떻게 쓸 것인가’,
**‘어떻게 조절하며 살 것인가’**는 아무도 안 가르쳐줍니다.
일본에서 본 ‘노후 일하는 법’
제가 일본에서 연수를 받던 게 1975년 여름이었어요.
그때 일본의 노인 비율이 8%, 지금 우리나라 노인 비율이 **16%**니까
우리는 일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는 셈이죠.
그런데 그때 일본의 노인들은 체면을 버리고 일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도쿄 증권거래소 지하에 주식이나 채권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는데요,
그 앞에서 머리 희끗한 70대 어르신들 100명 정도가 앉아 주식을 세고 있는 걸 봤습니다.
안내인에게 물었죠.
“저분들은 어떤 분들이에요?”
“옛날엔 회사 임원, 공무원 출신도 많아요.
시간당 500엔(우리 돈 약 5~6천 원) 받고 일합니다.”
또 호텔에서도 봤어요.
퇴근 시간에 젊은 직원들이 나가면, 할아버지들이 그 자리를 교대하더군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나이 들어서 일하려면 폼 나는 자리는 젊은 사람에게 주고,
나는 허드렛일이라도 할 각오가 필요하구나.”
그 뒤로 저는 **“높이 오르는 것보다 오래 일하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2015년엔 일본의 한 주간지가
퇴직자들이 많이 하는 일 5가지를 발표했는데요,
1️⃣ 아파트 관리인
2️⃣ 가사도우미(가사대행 서비스)
3️⃣ 방문 개호(간병·돌봄)
4️⃣ 경비, 단기 근무
5️⃣ 지역사회 봉사
이런 일들이 ‘쪽팔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부심 있게, 사회에 기여한다고 느끼며 일합니다.
우리나라도 점점 이렇게 바뀌고 있어요.
한번은 택시 기사님을 만났는데, 이분이 예전엔 외국계 회사의 서울지사장이었다네요.
기사 딸린 에쿠스 타고, 부인은 ‘사모님’ 소리 듣고 살았대요.
퇴직 후 그는 이렇게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3년 안에 개인택시 자격을 따자.
그러려면 3년 동안 영업용 택시로 무사고를 채워야 한다.”
그게 바로 평생 현역의 자세예요.
일·봉사·정년 — 세 번의 인생 정년
‘할 일이 없다’는 게 진짜 괴로움이에요.
서울 호텔 헬스클럽에 가보면 왕년의 장관, 차관, 사장들이 아침마다 모여 있습니다.
운동 좀 하고, 커피 마시고, 점심 먹고… 그게 하루 일과예요.
그런데 그게 하루이틀이지요.
어느 날 문득 깨닫습니다.
“오늘은 뭐 하지?”
그 생각이 매일 반복되면, 사람이 무너집니다.
한 고위직이 이렇게 말했다네요.
“요즘은 아침에 눈 뜨면
침대에서 내려오기 전에
‘오늘은 뭐 하지?’ 그 생각부터 들어요.”
그게 바로 퇴직 후 허무함의 시작입니다.

인생엔 세 번의 정년이 있습니다.
1️⃣ 고용 정년 – 회사에서의 퇴직
2️⃣ 일의 정년 – 본인이 정한 소일거리의 끝
3️⃣ 인생 정년 – 하늘이 부르는 날
이 세 번의 정년을 어떻게 맞을지 미리 준비하는 것,
그게 진짜 재테크보다 더 중요합니다.
✅ 결론 – 평생 현역
결국 결론은 하나입니다.
“가장 확실한 노후 대비는 재테크가 아니라 평생 현역이다.”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하며 살아야 합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건 하루를 보낼 이유, 사람을 만나는 관계, 움직이는 습관.
“일이 있으면 하루가 움직이고,
하루가 움직이면 인생이 버텨집니다.”
그게 바로 노후 3대 불안을 이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