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소식
공식 방통대 Blog에서 스크랩된 소식입니다


문화교양학과 이필렬 교수의 칼럼 <추첨 민주주의>가 

경향신문 오피니언 34면을 통해 소개되었습니다. 

뜨거운 선거가 이제 마무리 되고, 당선자들의 윤곽과 당선여부가 거의 결정되었다고 하는데 

방송대인은 모두 투표 잘 하셨겠죠!







[녹색세상]추첨 민주주의

이번 지방선거에 녹색당도 참여했다. 녹색당은 선거에 후보를 낸 여러 정당 중에서 유일하게 집권을 꿈꾸지 않는 정당일 것이다. 추첨을 통해서 대의원을 뽑기 때문이다. 추첨은 모든 추첨 대상이 주어진 일을 수행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한다. 그러므로 능력있는 사람들에게 통치 권력이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원천봉쇄하고, 이들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음으로써, 집권 자체를 가능하지 않은 일로 만든다. 임기까지 짧게 제한하면, 직접민주주의를 위한 최상의 장치도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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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첨은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시행되던 것이다. 아테네에서는 1000개 이상의 관직 대부분을 추첨으로 뽑힌 시민으로 채웠다. 임기는 1년이었고, 연임은 할 수 없었다. 군 전략가같이 전문성과 연속성이 요구되는 경우에는 연임이 허용되었고 선거제도도 활용되었지만, 공동체에 봉사할 일꾼 선출의 중심은 추첨이었다. 당시 아테네의 성인남성이 5만명 정도였으니 대다수가 한번씩은 관직에 뽑혀서 일을 해보았을 것이다.

녹색당의 대의원 추첨도 고대 아테네의 추첨 제도를 본뜬 것이다. 아테네에서와 같이 추첨이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주요 장치라는 폭넓은 공감이 있었기에 ‘최고 대의기관’의 구성원들을 추첨 방식으로 뽑자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녹색당은 추첨을 일꾼 선정의 중심 장치로 삼지 않았다. 당 간부들과 선거에 나갈 후보들은 투표로 선출하기 때문이다. 고대 아테네에서 그랬듯이 이런 자리는 전문성을 요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녹색당에서는 추첨보다 투표를 훨씬 자주 한다. 아마 다른 정당과 선거에서 경쟁해야 하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선거를 할 수밖에 없더라도 추첨에 깃들어 있는 직접민주주의 정신을 어느 정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한 자리를 번갈아 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 실험은 독일 녹색당이 창당 초기에 의욕적으로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들은 비례대표로 연방의회나 주의회에 진출한 당원은 2년 후에 의원직을 다음 순번에게 넘기도록 했다. 하지만 사퇴하지 않는 의원이 생기고 현실파가 점점 득세함에 따라 공식적으로 폐기되었다. 이 실험이 실패한 근본적인 원인은 독일 녹색당이 집권을 꿈꾸었기 때문이다. 직접민주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출범했지만, 권력 욕심이 많던 현실파는 사회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싶어했고 결국 성공하여 정권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녹색당의 초기 이상은 크게 훼손되었다. 지금 독일 녹색당의 주요 지지층은 고급 공무원과 교사이다.

이번 지방선거에 녹색당은 광역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해서 내보냈다. 정당명부에는 광역 시·도마다 오직 한 명만 올라와 있다. 홀수 번호를 여성이 차지하기에 여성밖에 없다. 만일 당선되면 한 사람이 4년 동안 의정활동을 해야 한다. 이 사람이 사퇴하거나 사망하면 의석은 사라진다. 그런데 이게 직접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녹색당과는 잘 안 맞는 것 같다. 당에서는 어차피 당선이 안될 텐데 그런 것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느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를 실천하려면 당 밖을 향해서도 그런 신호를 보내야 한다. 4명이나 8명의 후보를 명부에 올리고 당선되면 1년이나 6개월씩 번갈아가며 의원직을 수행하도록 하는 게 추첨과 직접 민주주의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유럽의회 선거가 있었다. 독일의 다양한 그룹이 연합한 정당이 0.63%를 득표해 의석을 하나 얻었다. 정당명부에는 71명의 이름이 올라갔다. 당선자는 한 달 후에 의석을 다음 후보에게 넘기겠다고 한다. 이렇게 한 달씩만 하면 5년의 회기 동안 60명이 의원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당의 긴 이름 속에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한 당’이라는 말도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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