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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수*가정의학과 전문의]

 

죽음,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

호스피스(hospice)는 원래 중세의 성지순례자가 하룻밤 쉬어가는 곳에서 시작하여 나중에는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장소의 역할을 하게 되었죠. 그러던 것이 생명 연장을 위한 의료행위(심장마사지, 인공호흡, 점적수액요법 등)를 포함하는 연명치료(연명의료)”의 의미로 쓰이다가 최근에는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 사람의 편안한 죽음을 돕는 의미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족의 죽음을 겪으면서 호스피스에 대해 고민하고 결국 긴밀한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담낭암 진단에 보통의 보호자처럼 유능한 전문의를 찾아 여기저기 수소문하다가 마침내 병원을 옮겨 수술받을 수 있도록 했지만, 1년 후 아버지의 담낭암은 재발하고 말았습니다.

방사선 치료와 고용량 비타민C 주사요법(항암제의 부작용을 낮추고 항암치료효과를 높여주는 요법) 등의 방법을 다양하게 시도하다가 병을 극복하지 못하신 아버지는 결국 호스피스로 들어가셨는데요, 쉼 없이 고통을 호소하던 아버지의 신음소리, 불안정한 호흡으로 생명을 이어가던 옆 침상 환자의 거친 숨소리에 둘러싸여 아버지의 침상을 지키면서 사랑하는 아버지가 좀 더 편안한 곳에서 삶을 마감하면 좋겠다라는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바람을 갖게 되었죠. 그리고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생을 마감하는 환자들이 편안하게 죽음을 맞도록 의사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요.

아버지께서는 걸어서 호스피스에 들어가셨지만 10일도 못 버티고 너무나 갑자기 돌아가셔서 제대로 이별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얼마 후 장인어른 역시 대장암 4기 진단을 받으셨고 항암치료 중 패혈증으로 돌아가시고 말았죠.

 

 

갑작스러운 사망
갑작스러운 사망

 

 

저는 두 아버지의 허망한 죽음을 겪으며 나는 앞으로 죽음을 앞둔 사람을 도울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호스피스 관련 일을 만나 당연한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호스피스 센터는 일반 병원과는 달리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음악치료사, 원예치료사, 성직자, 봉사자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함께하면서 먼저 가족들과 다 같이 상담을 진행하여 환자에게 맞는 편안한 임종 방법을 다각적으로 살펴보고 의논하여 결정합니다.

 

차도가 없어 항암을 중단하고 교외에서 지내다 4년 후 폐에 전이되어 일상생활이 어려워지면서 도움을 받기 위해 찾아온 환자가 있었는데요, 상담 중 가족 대부분이 음악을 전공하신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분들의 특성에 맞게 통증이 너무 심할 때 모르핀을 사용하면 증상이 잠깐 호전된다는 점을 이용해 가족음악회를 제안한 적이 있었는데요,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가 마땅치 않아 흐지부지되면서 고통 속에 그냥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때 “뭐든지 다 때가 있구나!”라는 것을 배웠죠.

 

바둑두는 것이 유일한 낙이고 이혼한지 오래된 80세 폐암 말기 환자도 생각납니다. 암이 뇌까지 전이되어 생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에게 감동적인 해후를 선물하기 위해 오래전 헤어진 부인을 만나게 해드리자라고 기획하고 자리를 마련했지만 어쩐지 환자는 어색하고 민망해하기만 했습니다. 핸드폰만 자꾸 만지작거리기에 통화하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물으니 오래된 바둑 친구를 만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당장 그가 말한 바둑 친구와의 만남을 주선했더니 너무 기뻐하셨는데요, 이분에게는 30년 전 헤어진 아내보다도 현재의 바둑 친구가 훨씬 소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환자가 정말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은 호스피스센터의 영원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환자들을 만나며 우리는  짧든 길든 죽음을 앞둔 호스피스 환자라는 생각을 하면서 죽음을 앞둔 존재로서 현재의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죠.

결국 저는 “인생을 구체적으로 미리 그려보자”라는 태도로 삶을 대하게 되었고 이것이 호스피스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는 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2007년부터 “10년 후를 먼저 살아보는 비밀작업을 해왔는데요, 2023년을 사는 여러분도 2033년으로 먼저 가서 지난 10년 동안의 인생에 꼭 일어나길 바라는 일을 상세하게 그려보세요.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10년을 살다보면 미리 생각해본 것과 비슷하거나 같은 일들이 갑자기 눈앞으로 탁 스쳐 지나갈 때가 생기는데요, 기다리던 버스가 왔을 때 탁 올라타듯 거침없이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제가 그린 미래는 호스피스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어느 순간 그와 관련된 일이 갑자기 다가왔고 그때 놓치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 자연스럽게 올라탔던 것입니다.

서초동의 검진센터에서 가정의학과 의사로 편안하게 일하다 과감하게 호스피스 센터로 옮길 수 있었던 용기는 10년 전 그려두었던 인생 설계도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그려보았던 상황과 갑자기 마주쳤을 때 , 깜짝이야!”가 아닌 올 것이 왔구나!”라고 생각하며 주저 없이 그 일을 잡아 이 일은 내가 해야 하는 일이야라고 생각하고 그냥 하면 되는 거예요

 

버킷리스트가 막걸리 마시기인 경관식이법(입으로 식사할 수 없어 튜브 등을 통해 소화기에 유동식을 주입하는 식이법)을 하는 환자가 계셨는데요, 이 희망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모두 한팀이 되어 콧줄 뽑기 작전에 돌입합니다.

콧줄을 빼는 연습, 음식 먹는 연습을 병행하며 조금씩 훈련한 끝에 다행히 음식을 넘길 수 있는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습니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술을 콧줄로 먹을 수는 없습니다, 입으로 먹어야죠. 적당한 때가 되자 저는 회진할 때 이분에게 미리 구매해둔 막걸리를 한잔 따라드렸는데요, 그때 환자가 ~ 정말 맛있다라며 행복해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후 저는 임종을 앞둔 환자가 원하는 일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이 일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1년 단위도 좋고 10년 단위도 좋으니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미리 구체화해 보세요. 그래야 어느날 갑자기 그 일과 마주치게 되었을 때 망설임 없이 올라타 원하는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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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 https://knou-oun.tistory.com/entry/%EC%A3%BD%EC%9D%8C-%EC%82%B6%EC%9D%B4-%EB%A7%8C%EB%93%A0-%EC%B5%9C%EA%B3%A0%EC%9D%98-%EB%B0%9C%EB%AA%85%ED%9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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