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습니다. 😊 Charles님이 다른 분들에게 쉽게 전할 수 있도록, 인문학적 시선으로 풀어낸 칼럼 형태로 작성해드릴게요.
‘나태(Idleness)’라는 오해 ― 베버리지 보고서의 숨은 맥락
1942년,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개혁가였던 윌리엄 베버리지는 세계사를 바꾼 한 권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른바 베버리지 보고서(Beveridge Report)다. 여기에서 그는 인간다운 사회를 가로막는 다섯 가지 ‘사회 악’을 지목했다. 궁핍(Want), 질병(Disease), 무지(Ignorance), 불결(Squalor), 그리고 마지막 하나 ― 나태(Idleness)였다.
오늘날 우리는 ‘idleness’를 곧잘 ‘게으름’으로 번역한다. 그래서 베버리지가 왜 개인의 게으름을 사회악으로 지목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그가 말한 Idleness는 결코 개인의 태만을 뜻하지 않았다.
‘게으름’이 아닌 ‘강제된 무위’
20세기 초 영국 사회에서 idleness라는 단어는 지금보다 훨씬 넓은 의미를 지녔다. 단순히 “게으른 성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지 못하는 상태’, 곧 무위(無爲)를 가리키는 중립적 표현이었다.
특히 베버리지는 Enforced Idleness ― “강제된 무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곧 실업을 의미한다. 중요한 점은, 실업이 단순히 개인의 능력 부족이나 게으름 탓이 아니라,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사실이다. 베버리지는 “일하고 싶지만 일자리가 없는 상태”를 사회악으로 규정한 것이다.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다
왜 하필 ‘idleness’였을까?
당시 영국에서는 실업자를 향한 도덕적 낙인이 강했다. “일하기 싫어서 노는 게 아니냐”는 편견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었던 것이다. 베버리지는 바로 이 지점을 뒤집었다. 그는 ‘idleness’를 사회악으로 지목하면서, 그 원인이 개인의 게으름이 아니라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사회 구조에 있음을 강조했다.
즉, idleness라는 단어 선택은 실수가 아니라 전략적 언어 사용이었다. 베버리지는 “국가가 완전고용을 책임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이 단어를 사회악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베버리지가 Idleness라 부른 것은 결국 “일할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의 게으름”이다. 그에게 있어 진짜 나태는 개인의 습성이라기보다, 일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사람들을 방치하는 사회의 태도였다.
8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청년 실업, 비정규직, 구조적 불평등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강제된 무위’로 내몰고 있는가? 그리고 그 책임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있지는 않은가?
맺으며
베버리지가 남긴 교훈은 단순하다. “게으른 개인”을 탓하기 전에, 그가 왜 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는지를 물어야 한다. Idleness라는 단어가 품은 역설은, 오늘 우리의 사회정책과 노동 문제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묵직한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