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예산의 역설, 그리피스 보고서가 풀어낸 '잘못된 방정식'
모든 정책에는 철학이 담겨있다고 하지만, 때로는 철학보다 더 강력한 것이 바로 '수학'이다. 1988년 영국, 마거릿 대처의 신자유주의가 한창이던 시절에 발표된 그리피스 보고서는 '인권'이나 '돌봄' 같은 단어 대신 '효율성'과 '예산'이라는 계산기로 영국의 지역사회보호 시스템을 해부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상식을 거스르는 '잘못된 방정식' 하나를 발견해냈다.
문제: 상식을 거스르는 '비뚤어진 방정식'
당시 영국의 복지 시스템에는 기이한 역설, 즉 '비뚤어진 인센티브 구조'가 존재했다.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A) 1인당 총 돌봄 비용: 시설보호 > 지역사회보호 (집에서 돌보는 게 더 저렴했다)
(B) 중앙정부 보조금: 시설보호 > 지역사회보호 (정부 지원금은 시설에 보내야 더 많이 나왔다)
지방정부 입장에서 계산기를 두드려보자. 총비용(A)은 시설보호가 더 비싸지만, 정부 보조금(B)을 빼고 난 순수 부담액은 오히려 지역사회보호가 더 커지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결국 지방정부는 국가 전체적으로는 돈이 더 많이 드는 '시설보호'를 선택하는 것이 재정적으로 더 합리적인, 비상식적인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그리피스가 발견한 '잘못된 방정식'의 정체였다. 국민의 세금이 비효율적으로 낭비되는 구조적 결함이었던 셈이다.
해결책: 방정식의 변수를 재정렬하다
경제학자였던 로이 그리피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정식을 새로 썼다. 그는 흩어져 있던 변수들, 즉 '예산'과 '책임'을 하나로 묶어 '지방정부'라는 단일 주체에게 넘겨주는 단순하고도 강력한 해법을 제시했다.
새로운 방정식: 지방정부가 (총 돌봄 예산)을 가지고, (총 돌봄 책임)을 진다.
이제 지방정부는 더 이상 중앙정부의 보조금 공식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주어진 총예산 안에서 가장 비용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자연스럽게 총비용이 저렴한 지역사회보호를 우선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구매자-공급자 분리' 원칙이다. 지방정부는 돌봄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공급자'가 아니라, 예산을 가지고 가장 효율적인 서비스를 구매하는 현명한 '구매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복지 시스템에 시장의 논리를 도입한 대담한 발상이었다.
차가운 계산의 이면
그리피스의 진단은 명쾌했고, 그 해법은 수학적으로 완벽해 보였다. 실제로 이 보고서는 비효율의 극치였던 영국 복지 전달체계를 혁신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 차가운 계산에는 빠진 변수가 있었다. '비용'이라는 숫자 뒤에 가려진 '돌봄의 질'이라는 변수다. '가장 저렴한 서비스'가 과연 '가장 좋은 서비스'와 동의어일까? 예산에 쫓기는 '구매자'는 서비스의 질보다는 가격표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완벽해 보였던 방정식은 '돌봄 노동자의 저임금 문제'나 '서비스 질 저하'라는 새로운 문제들을 낳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그리피스 보고서는 복지국가의 비효율이라는 낡은 방정식을 풀어낸 위대한 업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복지라는 단어의 최종 결과값은 '균형 잡힌 예산'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이어야 함을, 우리는 그의 계산서 위에서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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