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학기에 편입하여 두 학기째 공부중이다.
퇴직이 스물스물 다가오고 무료한 날이 이어져 뭔가 유의미한 '거리'를 찾다가 이 곳에 오게 되었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석사학위를 취득한터라 굳이 새로운 '학사'를 추가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이제 이순(耳順)에 이르러 여기서 배운 지식과 학위를 유용하게 써 먹을 자리도 기회도 없을 터이나 그냥저냥 가보련다.
여하튼 벗으로 TV와 Computer보다는 책이 나을 듯하다.
사연 없는 인생이 있을까? 여기 재학중인 분들도 다들 이런저런 사연 있으리라.
누군가는 저와 비슷하고, 누구는 호모 아카데미쿠스이고, 혹자는 열공하여 자격증 취득해서 엇진 미래를 꿈꾸는 분들도 있으리라.
살아보니 인생이란 별 것 아님을 실감한다. 다만 이 공동체에서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당한 수준의 경제력은 절대적이다. 세속적 지위까지 있다면 금상첨화이리라. 이건 속물이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 대다수가 꿈꾸는 모두를 위한 낙원구 행복동은 잡을 수 없는 무지개에 지나지 않음은 자명하다. 이래저래 너무 힘들지 않다면 그래도 인생은 살아볼만하다. 단 한번이기에.
나를 남들과 비교하지 말지어다. 비교가 불행과 자학의 시작이다. 우리는 울면서 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 이미 불공평이 시작되는게 아니던가. 빌 게이츠 왈 "인생은 불공평하다. 이것에 익숙해져라(Life is unfair. Get used to it.). 나는 내가 사는 집(2007)이 아방궁이고 내가 타는 차(2011)가 너무 편안하고 좋다. 안분지족(安分知足)이다. 벌써부터 나는 무쏘의 뿔처럼 혼자 가고 있다. 걷고 걷는 중간에 낮술이자 혼술이 너무 좋다.
인생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기의 ‘이상적인 자아’와의 경쟁을 지향하는 것이라야 한다. 나는 공동체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미천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우리 각자는 건강한 사회 발전에 밀알이 되고자 하는 적극적 의지를 가질 필요가 있다. 당신이 세상에 기여하는 것보다, 당신이 속한 세상이 당신에게 더 많은 것을 주고 있음을 깨닫고, 조금이라도 보답하려는 능동적 사고와 실행이야말로 우리의 존재론적 사명이라 여겨진다.
거두절미하고, 우리는 후안구행(厚顔狗行)이 난무하는 이 부조리한 세상을 잘 버티어 내야 하는 아쉬움을 지닌채
늘 무언가를 갈구하고 기다리면서 흔들리는 가련한 미물(微物)이어라.
방송대 재학중인 모든 분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무엇이 성공인가 - 에머슨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듯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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