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주의 학파, 사회사업의 ‘의사 선생님’ 등장기
1920년대 미국. 사회복지가 막 전문직으로 자리 잡아가던 시절이었어요. 그 전까지는 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밥을 나눠주고 옷을 챙겨주는, 말 그대로 구호 활동이 중심이었죠. 그런데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사회복지사들이 하얀 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들고 있던 건 아니지만, 마음만은 이미 ‘의사 선생님’이 되어 있었어요.
왜냐고요? 그때 들어온 새로운 바람, 바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덕분이었죠. 인간의 마음속에는 무의식이 숨어 있고, 어린 시절의 경험이 성격과 행동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당시로선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사회복지사들은 생각했죠.
“아하, 단순히 돈이 없고 집이 없어서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라, 그 사람 마음속 깊은 사정까지 들여다봐야 하는구나!”
그리하여 탄생한 게 바로 진단주의 학파입니다. 이름 그대로, 문제를 진단(diagnosis) 하는 게 핵심이었어요.
환자 대신 클라이언트
진단주의 학파의 사회복지사는 마치 의사처럼 행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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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언트의 성격, 가족사, 과거 경험을 꼼꼼히 살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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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 원인 진단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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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단순히 빵을 주는 대신, 상담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려 했죠.
대표 인물은 바로 메리 리치몬드(Mary Richmond). 그녀가 1917년에 쓴 『Social Diagnosis』는 오늘날로 치면 사회사업 교과서 1권 같은 책이에요.
하지만…
이들의 방법은 한계도 있었습니다. 너무 ‘내면’에만 집중하다 보니, 가난을 만들어내는 사회 구조적 문제는 뒷전이었죠. 마치 “환자의 몸 상태”만 보다가 “그가 왜 병에 걸릴 수밖에 없는 환경”은 놓친 셈이었어요.
그래서 1930년대 대공황이 닥치자, 세상이 묻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굶고 있는데, 무의식 분석만 하고 있을 거야?”
그 비판 속에서 등장한 게 바로 기능주의 학파. 이들은 내면보다 환경과 사회적 기능 회복을 더 강조했죠.
정리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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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주의 학파 = 개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문제를 의학처럼 진단하려 했던 사회사업의 초기 주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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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 사회 문제를 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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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 = 사회복지를 단순 구호가 아니라 전문적 상담·치료 활동으로 끌어올린 첫걸음.
그러니까 진단주의 학파는 사회복지 역사 속에서 마치 “스스로를 의사라고 믿었던 사회복지사들”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시도가 있었기에, 사회복지는 ‘밥 주는 일’에서 ‘사람을 이해하는 일’로 진화할 수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