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두라(Albert Bandura)가 보보인형을 사용한 이유
한 장난감이 학문의 아이콘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반두라의 연구실 바닥에 놓였던 커다란 공기주입식 인형 ― 이름하여 보보인형(Bobo doll). 둥근 밑동에 바람이 가득 차 있어, 아무리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도 넘어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그 인형은, 아이들의 분노와 모방심리를 안전하게 받아내는 묵묵한 실험 파트너였다.
반두라가 보보인형을 선택한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아이들이 타인의 행동을 보고 배운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 대상이 살아 있는 존재일 수는 없었다. 동생이나 친구를 때리게 할 수도 없고, 실험자 자신이 맞아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때려도 울지 않고, 맞아도 상처 입지 않는, 그러나 분명히 ‘공격 대상’으로 작동하는 인형이었다.
보보인형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마치 철학적 장치처럼 기능했다. 그것은 인간의 공격성을 비추는 거울이자, 모방이라는 심리적 과정을 드러내는 스크린이었다. 아이들이 성인의 공격 장면을 본 뒤 보보인형을 향해 똑같이 주먹을 휘두르는 순간, 반두라가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는 분명해졌다. “인간은 단순히 보상과 처벌로만 학습하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의 행동을 보고, 해석하고, 따라 하며 살아간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장난감이 학문사에서 상징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보보인형은 단순한 실험 도구에서 벗어나, 인간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지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철학이 고대 그리스의 원형경기장에서 출발했듯, 심리학의 한 혁명은 어린아이 장난감 상자에서 시작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