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학으로 읽는 사회복지학(3)
프로이트의 정신지도 ―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세 개의 목소리
우리는 흔히 스스로를 “나는 내가 하는 생각을 안다”라고 믿는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과감하게 선언했다. “아니요, 당신은 모릅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거대한 내면의 바다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는 것이다.
지형학적 모형 ― 빙산 아래의 세계
프로이트는 인간 정신을 세 개의 영역으로 나누었다. 의식, 전의식, 무의식.
- 의식(Consciousness)은 지금 여기, 내가 자각하는 세계다. 마치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는 배우처럼 분명하게 보인다. 하지만 그 무대는 놀라울 정도로 좁다. 우리가 실제로 의식하는 것은 전체 정신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 전의식(Preconsciousness)은 무대 뒤편 대기실과 같다. 필요할 때 문을 열면 기억이나 지식이 걸어 나온다. 전의식은 무대와 뒷무대를 연결하는 다리, 즉 의식과 무의식의 교량 역할을 한다.
- 무의식(Unconsciousness)은 무대조차 없는 심연이다. 사회가 금지한 욕망, 억눌린 상처, 말로 하지 못한 욕구가 모두 이곳에 묻혀 있다. 그러나 억눌린 욕망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는다. 해결되지 못한 채 남은 무의식적 충동은 때로는 신경증이라는 모습으로, 혹은 알 수 없는 행동으로 고개를 내민다.
사회복지학은 바로 이 지점을 주목한다.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문제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보이지 않는 심연과 대화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구조적 모형 ― 내 안의 삼중극
프로이트는 또 다른 차원에서 인간 성격을 세 개의 목소리로 설명했다. 원초아(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 이것은 우리 마음속에서 매일 펼쳐지는 내적 연극이다.
- 원초아(Id)는 욕망의 화신이다.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며, 단순하고 강렬하다. “원한다, 지금!” 이것이 원초아의 언어다. 쾌락원리를 따르는 이 목소리는 마치 배고픔과 목마름처럼 직접적이다.
- 자아(Ego)는 조율자다. 현실의 규칙을 무시했다가는 상처 입을 수 있음을 잘 알기에, 욕망을 현실에 맞게 수정한다. 원초아의 충동과 사회의 규범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균형을 잡는, 일종의 현실 정치가다.
- 초자아(Superego)는 내면의 재판관이다. 사회의 규범과 부모의 가르침이 이 목소리에 새겨진다. 욕망이 규범을 거스르면 죄책감과 수치심을 불러와 원초아를 억제한다.
이 셋은 매 순간 부딪히고 타협한다. 원초아가 “먹고 싶다”고 외치면, 초자아가 “그러면 안 돼”라며 막아선다. 그 가운데서 자아는 “그렇다면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라며 절충안을 찾아낸다. 이 갈등과 타협의 연속이 바로 인간 행동의 무대이자, 사회복지학이 만나는 인간 드라마다.
인문학적 여운
프로이트의 두 가지 모형은 단순한 이론적 도식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거대한 사유다. 우리는 이성적 기계가 아니라, 욕망과 도덕, 현실이 씨름하는 복합적 존재다.
그래서 사회복지학은 인간을 이해할 때, 단순히 ‘문제 행동’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 있는 무의식적 갈등, 그리고 내 안의 세 목소리의 긴장을 함께 읽어내야 한다. 결국 타인을 돕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빙산 아래’를 존중하며, 내면의 연극 무대에 귀 기울이는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