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우 | 내분비내과]

1. 보이지 않지만, 평생을 좌우하는 것
오늘은 우리 몸의 실제적인 지배자, <호르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호르몬이라고 하면 다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시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분들이 건강한 뼈가 나이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사실은 나이보다 호르몬의 영향이 훨씬 큽니다.
더 놀라운 점은 호르몬이 평생 분비되는 총량이 차 한 숟가락 정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정형외과에서는 뼈라도 만질 수 있고, 심장은 수술을 하면 눈에 보이기라도 하지만, 호르몬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보이지 않는 호르몬을 어떻게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2. 미술로 풀어보는 호르몬의 얼굴과 감정
모나리자를 보면 머리카락은 부시시하고, 눈빛은 우울하며, 모공이 도드라지고 눈썹이 없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 얼굴은 갑상선 기능 저하증의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호르몬 이야기를 미술적으로 풀어볼 수 있습니다.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을 보면, 그가 얼마나 해바라기와 노란색에 집착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노란 테이블, 노란 화병, 노란 해바라기.
해바라기 그림만 계속 그리고, 노란색에 집착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서너 가지 노란색을 사용하지만, 고흐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진한 노란색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 노란색에 대한 집착을 저는 도파민 호르몬과 연결해 설명합니다. 도파민은 원래 좋은 호르몬입니다.
4분 안에 도파민이 분비되면 호감이 생기고, 도파민이 나오지 않으면 비호감이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호감을 시작하게 하는 것이 바로 도파민입니다.
그런데 이 도파민이 4분 이상 지속되면 과욕으로 변합니다.
어느 정도의 정상 범위를 유지해야 하는데, 너무 많아도 문제이고 부족해도 문제가 됩니다.
도파민이 부족해지면 파킨슨병이나 무기력증이 생기고, 도파민이 많아지면 집착과 충동이 생깁니다.
충동구매를 자주 하시는 분들, 부주의한 성향을 가진 분들은 도파민이 많이 분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도파민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뭉크의 「절규」처럼 조현병 환자에게서 보이는 감정의 일렁거림과 비슷한 상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도파민은 ‘호감 호르몬’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정상 범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호르몬입니다.
저희 내분비내과 의사들은 사랑이라는 감정도 결국은 호르몬의 작용이라고 생각합니다.

3. 사랑, 그리고 호르몬이라는 물감
도파민이 호감을 만든다면, 호감이 있어야 사랑에 빠지지 않겠습니까?
도파민은 흔히 플라토닉한 사랑을 담당한다고 설명됩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보면, 여인의 발밑은 깎아지른 절벽인데도 황홀한 눈빛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위험한 상황에서도 감정을 유지하게 만드는 호르몬이 바로 엔도르핀입니다.
엔도르핀은 열정적인 사랑, 에로적인 사랑을 담당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어머니가 자식을 향해 느끼는 사랑처럼, 이타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흔
히 아가페적 사랑이라고 부르는 이 감정에는 옥시토신 호르몬이 작용합니다.
음식에 단맛, 쓴맛, 신맛처럼 여러 맛이 있듯이, 어떤 호르몬의 물감으로 어떻게 그림을 그렸느냐에 따라 사랑의 결도 달라집니다.
저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호르몬의 물감으로 그려낸 수채화라고 표현합니다.
사람마다, 그리고 인생의 시기마다 사랑의 결이 달라지는 이유도 결국 우리 몸속 호르몬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처럼 호르몬은 감정 조절뿐 아니라, 우리의 뇌와 건강까지 결정하는 화학 물질입니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아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했는데, 알고 보면 그 불로초가 바로 우리 몸속 호르몬이었던 셈입니다.
4. 호르몬의 균열, 그리고 몸이 보내는 신호
호르몬은 약 4천 가지가 있습니다. 건강과 질병의 경계를 가르는 화학 물질입니다. 호르몬은 뇌하수체, 갑상선, 췌장, 정소, 난소뿐만 아니라 지방, 소장, 간, 근육에서도 분비됩니다. 이 4천 종의 호르몬이 우리의 의식과 감각, 건강을 전반적으로 조절합니다.
그래서 호르몬에 문제가 생기면 당뇨, 대사증후군, 고혈압, 고지혈증 같은 성인병뿐 아니라 갑상선 기능 이상, 골다공증, 암, 치매까지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호르몬 관리가 중요합니다.
특히 중요한 개념이 미병입니다. 건강하지도, 그렇다고 정상도 아닌 회색지대의 상태입니다. 병원에 가면 “괜찮다”는 말을 듣지만, 실제로는 괜찮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 시기에는 이미 호르몬에 균열이 생겨 있습니다. 호르몬이 몸에 신호를 보내고 있는 상태인 것이죠. 이 균열을 이 단계에서 찾아 고치면, 질병으로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 중요한 개념이 미병입니다. 건강하지도, 그렇다고 정상도 아닌 회색지대의 상태입니다.
병원에 가면 “괜찮다”는 말을 듣지만, 실제로는 괜찮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 시기에는 이미 호르몬에 균열이 생겨 있습니다. 호르몬이 몸에 신호를 보내고 있는 상태인 것이죠.
이 균열을 이 단계에서 찾아 고치면, 질병으로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호르몬 건강 자가진단 체크리스트
아래 항목 중 해당되는 것이 몇 가지인지 확인해보세요.
- 얼굴이나 온몸이 잘 붓는다
- 피로가 잘 풀리지 않는다
- 밥을 먹어도 계속 뭔가 더 먹고 싶다
- 운동을 해도 살이 자꾸 찐다
- 감정 조절이 잘 안 되고 늘 우울하다
- 또래보다 나이 들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 배꼽 위는 덥고 열이 나는데, 배꼽 아래는 차갑고 발이 시리다
- 땀이 비 오듯 난다
- 밤에 화장실을 자주 간다
- 잠을 잘 못 자거나, 자도 토끼잠을 자고 악몽을 꾼다
이런 증상들은 모두 호르몬과 관련된 신호입니다.
이 중 다섯 가지 이상에 해당된다면, 내분비내과에서 호르몬 검사를 받아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5. 갱년기는 한 번이 아니라, 긴 터널이다

호르몬과 관련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바로 갱년기입니다.
사춘기 아이와 갱년기 엄마가 다투면 갱년기 엄마가 이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갱년기는 그만큼 강력합니다.
그런데 갱년기는 50대에 한 번 겪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50대에는 성호르몬이 무너지고, 이를 성장호르몬으로 보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성장호르몬도 60대에 다시 무너지면 제2의 갱년기가 오고, 이후 멜라토닌까지 감소하면 제3의 갱년기가 찾아옵니다.
요즘은 100세, 120세 인생을 이야기하는 시대입니다. 환갑은 끝이 아니라, 인생의 이모작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갱년기는 하나의 시점에서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긴 터널을 하나씩 지나가는 호르몬의 스펙트럼이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