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보관 운동(Settlement House Movement), 번역의 관습을 넘어설 수 있을까?
“Settlement House Movement”는 영어권 사회복지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다. 그런데 한국 학계에서는 이 중요한 운동을 ‘인보관 운동(隣保館 運動)’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 단어가 오늘날 우리의 일상 언어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일본식 한자 번역의 잔재라는 점이다.
원래 “Settlement”는 ‘정착’, ‘거주’를 뜻한다. 따라서 “Settlement House”는 “빈민 지역에 정착하여 함께 사는 집”이라는 의미를 담는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隣保館(이웃을 보호하는 집)’으로 번역했고, 한국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그 용어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 결과, 현대 한국 사회에서 ‘인보관’은 아무도 쓰지 않는 어색한 말이지만, 학문적 용어라는 이름으로 계속 유지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복지학의 개념이 외부 권력(일제)의 언어 틀을 통해 수입·정착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학문은 개념을 통해 사고한다. 그렇다면 낡고 부정확한 개념어를 고집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사고 방식 자체를 왜곡할 위험이 있다.
이제는 물을 때가 되었다. 학계의 관습을 답습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인보관 운동” 대신 “정착관 운동”, “이웃공동체관 운동”, “지역사회관 운동”처럼 현대 한국어 감각에 맞는 번역이 가능하다. 물론 기존 연구와의 단절을 우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학문은 살아 있는 언어 위에서 발전해야 한다.
결국 번역의 문제는 학문의 민주성과도 직결된다. 전문 연구자만 아는 낯선 일본식 용어가 아니라, 시민과 학생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우리말 개념어로 바꿔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회복지학이 추구하는 참된 ‘공공성’에 부합하지 않을까?
직관적으로 전혀 이해되지 않는 일본식 한자 용어를 굳이 고집해야 하는가? 차라리 영어가 더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