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원*작가]
제가 인문학을 30년 연구하면서 깨달은 게 있거든요. 100권 쓰면서 뭘 깨달았냐면, 인문학은 ‘소중한 사람에게 예쁘게 말해주는 것’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아마 집에 돌아가시면 바로 깨닫게 될 거예요. 예쁘게 말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예쁘게 말한다는 게 뭘까요? 그저 예쁜 단어의 조합이 아니에요. 예쁜 말 합친다고 예뻐지지 않아요. 왜 소중한 가족, 아이들한테, 배우자한테 예쁘게 다정하게 말하지 못할까요? 왜 못 하냐면 언어 능력이 높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걸 어떻게 하면 높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는데, 자녀 교육의 관점에서 얘기해 보도록 할게요.
예쁘고 좋은 말을 하기 위한 ‘기억’
우리가 프랑스 파리에 가면 가장 먼저 어딜 가죠? 에펠탑. 거길 가면 놀랍게도 한국인이 반이에요. 그 사람 중 대다수의 부모는 아이들한테 유럽 문물을 보여주고 싶어서, 맞벌이임에도 잘릴 각오로 휴가 몽땅 긁어 써서 2주 내고 왔어요.
에펠탑에서 뭐 해요? 사진 찍죠. 어떻게? 항상 무언가의 앞에 있어요. 아이가 놀고 있으면 부모는 카메라를 들고 “여기 봐! 웃어! 점프! 점프해야 해!” 그럼 이 아이는 2주 동안 카메라 보고, 웃고, 점프하고, 이동하고. 점프력 훈련하러 왔나요?
그 가족들은 귀국할 때 어떤 이야기할까요? 그렇게 기억에 남지 않는 여행을 한 가족들은 비행기 귀국할 때 나누는 얘기가 똑같아요. "다음에 어디 갈까?" 왜 다음 얘기를 할까요? 이번에 남은 게 없어.
그런데 기억을 남긴 사람들은 어떤 얘기를 해요? "나 빨리 회사 출근하고 싶어, 빨리 학교 가고 싶어." 왜냐하면 이번에 깨달은 것들, 친구랑 얘기를 나누고 싶어, 일에 적용하고 싶거든요. 얘기하는 게 달라요.
아이와 같이 좀 더 다정하게 예쁜 말을 하기 위해서는 ‘기억’을 많이 남겨야 해요. 기억 안에는 감정이 있어요.
아까 사례를 다시 돌아가서, 반대로 아이들에게 "네가 한 번 사진 찍어봐."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이들은 결코 쉽게 찍지 않아요. 내가 생각한 부분을 잘 구현하려고 이러저러하다가 집중하죠. 여기에서 생각이 시작됩니다. 집중, 관찰. 그걸 인제 사진으로 변주, 찍고 나서는 부모한테 설명까지. “엄마, 나 그때 사진 찍으면서 옆에 벌레가 기어다녔잖아~” “사진 찍기 전에 엄마랑 같이 스파게티 먹다가 엄마 볼에 스파게티 소스 흘렸었지? 되게 재미있었어.” “엄마가 나 사진 찍으라고 했을 때 정말 즐거웠어. 뛰면서 찍었었지?” 이게 다 감정이에요. 기억 안에 감정이 들어가 있어요. 그 아이는 집에 와서 10년이 지나도 다시 그 기억을 떠올릴 수 있어요.
말을 예쁘게 하지 못하고 글을 쓰지 못한다는 것은 글쓰기 능력이나 말하기 능력이 없는 게 아니고, 부모가 구사하는 언어가 아이를 일상의 곳곳에서 멈추게 하는 지적인 역할을 못 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압축하면 부모의 언어는 아이를 일상 있는 곳곳에서 멈추게 하는 지적인 도구다. 이렇게 생각하셔야 해요. 그래서 움직인다는 것은 아무도 느끼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을 독서에서 생각해 보면 아이에게 책 주면서 이렇게 물어보는 거예요. "너 책 읽다가 어디에서 멈췄니?" 다 읽었냐고 안 묻고 과정을 묻는 거예요. 과정 안에 감정이 있잖아요. 그러면 이제 아이들한테 질문할 수 있어요. “어떤 문장이 너를 멈추게 했니? 그 문장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어? 그 생각을 한번 너의 일상에 적용해 볼 수 있을까?” 우리 항상 독서는 실천으로 생각하죠. 말만 그래요. 실제로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어떻게 하는지 방법을 모르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한마디 바꿈으로써 아이가 멈춰서 생각하게 되죠.

예쁘고 다정한 말을 하기 위해 피해야 하는 말들 3가지
우리는 항상 아이가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아이가 책을 읽지 않고 있으면 부모의 삶을 읽고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해요. “너를 읽고 있다. 지금” 그 부모님이 책을 대신할 만한 행동과 말을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되면 부모님이 자기 말을 조금 더 절제하며 살게 되겠죠.
제가 생각하는 예쁘고 다정한 말 하기 위해서 가장 피해야 할 말들, 여기 세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너무’, 두 번째 ‘대박’, 세 번째 ‘소름’
이걸 빼고 아이랑 같이 대화를 나눠보세요. 그럼 어떻게 될까요? 말수가 줄어들어요. 갑자기 정중해지고 아이한테 말을 못 하게 돼요. 어떤 걸 의미할까요? 그것은 내가 생각을 시작하게 됐다는 것을 의미해요. 그 순간을 견딜 수 있어야 해요. 그럼 이렇게 되겠죠. 한번 생각하고 나온 말을 그대로 얘기하면 정보만 얘기할 수 있지만 두 번, 세 번 생각하고 나온 얘기라면 마음까지 전할 수 있다. 그걸 깨닫게 될 보면 그걸 깨달은 부모와 깨달은 걸 본 아이가 서로 나누는 말의 온도가 달라지겠죠.
사랑을 경험하게 되면 사랑을 포기할 수 없게 됩니다. 따뜻한 것을 알게 되니까. 아이는 그 따뜻한 순간 다정한 말, 예쁜 말을 이제 더 이상 포기하지 않게 되죠.

부모의 언어는 아이를 키우는 아름다운 정원
사랑은 입에서 나올 때가 사랑이 아니고 아이 마음에 도착할 때까지가 사랑이더라고요. 도착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에요. 그래서 아이들은 도착하지 못하는 사랑을 받으면, 나중에 나이 들어서 “엄마가 나 언제 사랑했다고 그래? 난 받은 적이 없는데.” 엄마는 맨날 주기만 했지 도착한 적은 없어요.
그래서 부모가 조금 더 아이한테 예쁜 말, 다정한 말, 그리고 가정 안에서 정말 행운이 가득하고 좋은 소식이 가득 들리기를 원한다면 그런 소식이 올 수 있는 말을 먼저 심어야 합니다. 저는 부모의 언어는 아이라는 존재를 키우는 아름다운 정원이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원에 어떤 꽃, 어떤 씨앗을 심느냐, 그게 바로 언어에요.
아이를 키우면 힘들어요. 제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아이가 밤에 잠을 안 자서 눈물 날 정도로 혼냈어요.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가 어떻죠? 다 잊은 듯 다시 뛰어와서 다시 안겨요. 그럴 때 엄마는 착각해요. ‘내가 너 용서했다고’ 그런데 때리는 사람이 용서하는 게 아니잖아요. 혼남을 받은 사람이 용서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어떤 생각을 하냐면 ‘매일 당신의 아이는 당신을 용서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아이는 여러분을 용서하고 다시 또 웃으면서 달려옵니다.
우린 항상 우리를 힘든 곳에 가두기보다는 긍정적인 곳에 우리를 놓기를 항상 원하거든요. “어떻게 하면 오늘도 흐르는 시간 속에서 흘러가는 시간보다 아이에게 귀한 가치를 줄 수 있을까? 시간이 아깝지 않은 말들을 들려줄 수 있을까?” 이 말을 여러분들이 기억한다면 아마 오늘부터 아이한테 들려줄 수 있는 말을 더 보게 되고 깊이 있게 될 거라는 것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