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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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표시를 한 양들

 

## 1.

 

박준서는 구청 사회복지과 7년차 공무원이었다. 오늘도 그는 민원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제가 20년 넘게 국민연금 꼬박꼬박 냈는데요, 지금 와서 받는 돈이 이것밖에 안 된다고요?"

 

70대 노인의 목소리는 떨렸다. 준서는 화면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어르신, 저희 국민연금은 적립방식이 아니라 부과방식입니다. 그러니까 어르신이 내신 돈이 어르신 계좌에 쌓인 게 아니라..."

 

"그럼 내 돈은 어디 갔어요?"

 

"지금 연금을 받으시는 분들에게 이미 지급되었습니다. 어르신도 지금 받으시는 돈은 현재 일하시는 젊은 세대가 내는 보험료에서 나오는 거고요."

 

노인은 허탈한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 세대 간 재분배. 교과서에선 그럴싸하게 들렸던 단어가, 현장에선 배신감으로 다가왔다.

 

## 2.

 

점심시간, 준서는 대학 동기 민수를 만났다. 민수는 대기업 인사팀에서 일했다.

 

"너희 회사 기업복지 좋다며?"

 

민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원아파트, 자녀 학자금, 연금까지. 솔직히 월급보다 복지가 더 좋아서 다니는 거지."

 

"부럽다. 우린 공무원이라 그런 거 없잖아."

 

"그래도 너희는 정부 일반예산으로 안정적이잖아. 우리 같은 건 회사 사정 나빠지면 복지부터 짤리는데."

 

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두 개의 복지 세계는 이렇게 평행선을 그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민수처럼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회사 복지와 국가 복지를 동시에 받았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둘 다 받지 못했다. 수직적 재분배는 이론일 뿐, 현실은 수평적 불평등으로 가득했다.

 

## 3.

 

오후, 준서는 김영희 씨의 서류를 검토했다. 40대 여성, 비정규직 청소원. 두 달 전 실직했다.

 

"실업급여 신청하러 왔습니다."

 

"네, 서류 확인할게요. 아... 김영희 씨, 고용보험 가입 기간이 5개월밖에 안 되네요. 최소 6개월은 되어야 하는데..."

 

여성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한 달 차이로 안 된다고요? 저 지금 당장 월세도 못 내는데..."

 

"죄송합니다. 제도가 그렇게 되어 있어서..."

 

여성이 나간 뒤, 준서는 책상에 얼굴을 묻었다. earmarked tax, 목적세. 복지 재원은 마치 귀에 표시를 한 양들처럼 이미 주인이 정해져 있었다. 정말 급한 사람에게는 한 푼도 갈 수 없었다.

 

## 4.

 

저녁, 준서는 아버지와 통화했다. 아버지는 지방의 작은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아버지, 요즘 공장은 어때요?"

 

"힘들지. 사회보험료가 너무 올라서 직원 한 명 더 뽑을 엄두가 안 나."

 

"그래도 직원들 복지를 위해선..."

 

"준서야, 네 말이 맞아. 근데 말이야, 보험료를 많이 내면 우리가 투자할 돈이 줄어들잖아. 새 기계도 못 사고, 공장 확장도 못 하고. 그럼 결국 일자리도 못 만드는 거야."

 

투자 효과의 감소. 준서는 강의록에서 본 내용이 떠올랐다. 기업의 사회보험료 부담이 늘면 투자 여력이 줄어든다. 장기적으론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 논리도 있었다. 복지가 좋아지면 인적자본이 향상된다. 건강한 노동자, 교육받은 인재. 그들이 경제를 성장시킨다.

 

어느 쪽이 맞을까? 준서는 알 수 없었다.

 

## 5.

 

주말, 준서는 자원봉사로 복지관에 갔다. 거기서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을 만났다.

 

"저희가 모금한 돈으로 독거노인 분들 식사 지원하고 있어요."

 

"대단하네요. 자발적 기여가 이렇게 중요한 거군요."

 

한 학생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발적 기여요? 솔직히 말하면... 교수님이 봉사시간 채우라고 해서 온 건데요. 그래도 자발적인 건가요?"

 

준서는 씁쓸하게 웃었다. 준강제적 기여. 사회적 압력에 의한 '자발'. 그것도 복지 재원의 일부였다.

 

그때 한 할머니가 준서에게 다가왔다.

 

"젊은이, 고맙네. 근데 말이야, 우리 같은 늙은이들 돌보는 건 원래 자식들이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요즘엔 그게 어렵잖아요."

 

"그래도 말이야, 가족이 돌보는 게 제일이지. 그게 비공식 부문 복지라고 하던가? 나 같은 늙은이도 그런 말은 들어봤어."

 

할머니는 쓸쓸하게 웃었다. 자식은 서울에 있었고, 일 년에 한두 번 얼굴을 봤다.

 

## 6.

 

월요일 아침, 긴급 회의가 소집되었다.

 

"예산이 삭감됩니다. 복지 프로그램 30% 축소해야 합니다."

 

과장의 말에 사무실이 술렁거렸다.

 

"과장님, 그럼 지금 진행 중인 사업들은요?"

 

"선택해야죠. 어떤 사업을 살리고, 어떤 사업을 죽일지."

 

준서는 책상 위의 서류들을 바라봤다. 장애인 재활 프로그램, 한부모 가정 지원, 노인 일자리 사업. 모두 절박했다.

 

조세지출이 줄어들면 일반예산으로 충당해야 한다. 하지만 그 예산도 한계가 있었다. 공공재원의 제약.

 

그날 저녁, 준서는 강의록을 다시 펼쳤다.

 

"사회복지정책의 성공적 집행을 위한 필수조건은 재원이다."

 

그는 빨간 펜으로 밑줄을 그었다. 그리고 옆에 작게 썼다.

 

'하지만 재원은 항상 부족하다.'

 

## 7.

 

몇 주 후, 준서는 김영희 씨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새 일자리를 구했다고 했다.

 

"축하드려요!"

 

"고맙습니다. 그런데요..."

 

그녀가 머뭇거렸다.

 

"이번 일자리도 5개월 계약이에요. 또 6개월 안 채우면 실업급여 못 받는 거 아닌가요?"

 

"..."

 

"차라리 일 안 하고 공공부조라도 받을까 봐요. 기초생활수급자 신청하면 되잖아요?"

 

준서는 할 말을 잃었다. 실업함정. 빈곤함정. 일을 해도, 안 해도 가난한 구조.

 

"김영희 씨, 그래도 일하시는 게 나아요. 장기적으로..."

 

"장기적으로요? 전 당장 내일이 걱정인데요."

 

그녀가 돌아서는 뒷모습을 보며, 준서는 생각했다. 단기적 재분배와 장기적 재분배. 이론에서는 명확했지만, 현실에서는 누군가의 고통이었다.

 

## 8.

 

그해 겨울, 준서는 인사이동 명령을 받았다. 복지정책 연구팀으로 발령이 났다.

 

새 사무실 책상에는 두꺼운 보고서가 쌓여 있었다.

 

"우리나라 복지체계의 X-비효율성 분석"

 

보고서를 펼치자, 익숙한 단어들이 보였다. 관료제의 비능률성, 독점적 공급, 도덕적 해이.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준서는 이제 알았다. 이 단어들 뒤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노인도, 청소원도, 아버지도, 할머니도 있었다.

 

그는 펜을 들었다.

 

"복지는 완벽할 수 없다. 하지만 포기할 수도 없다."

 

밤새 그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적립방식과 부과방식의 조화, 공공과 민간의 협력, 선택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의 균형.

 

창밖으로 눈이 내렸다. 하얀 눈송이들은 모두 달랐지만, 같은 땅 위에 쌓였다.

 

복지도 그래야 한다고, 준서는 생각했다.

 

## 에필로그

 

봄이 왔다. 준서의 보고서는 정책에 반영되었다. 작은 변화였지만, 변화였다.

 

김영희 씨는 6개월 이상 일하게 되었고, 고용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날 저녁, 준서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요즘 공장은 어때요?"

 

"좀 나아졌어. 정부에서 영세기업 사회보험료 지원해준대. 직원 한 명 더 뽑을 수 있을 것 같아."

 

전화를 끊고, 준서는 창밖을 바라봤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돈을 내고, 누군가는 돈을 받았다. 누군가는 일했고, 누군가는 쉬었다.

 

그들은 모두 귀에 표시를 한 양들 같았다. 각자 다른 울타리에 속했지만, 같은 목초지를 공유했다.

 

복지는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사람들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준서는 미소 지었다.

 

내일도, 그는 다시 사무실로 갈 것이다.

 

---

 

 

---

 

작가의 말

 

이 소설은 사회복지정책론 강의의 핵심 개념들을 녹여낸 이야기입니다. 

 

- 공공재원과 민간재원의 대비

- 적립방식과 부과방식의 갈등

- 세대 간/세대 내 재분배의 복잡성

- 수직적/수평적 재분배의 현실

- 도덕적 해이와 X-비효율성의 딜레마

- 자발적 기여와 비공식 부문의 의미

- 실업함정과 빈곤함정의 구조적 문제

 

복지는 숫자와 제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결국 사람의 문제입니다. 이 소설이 그 사실을 조금이나마 전달했기를 바랍니다.

 

  • ?
    찰스배 8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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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게으른돼지 6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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