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드러나는 이미지 이면에 훨씬 더 크고 풍부한 이야기가 숨어 있는 다층적인 매력이 가득한 매체인데요, 20년 넘게 사진기자로 일하며 취재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보니 좋은 사진을 찍는 것은 결국 좋은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터키의 사진작가 아퍼 애쉴타스의 “만약 그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이라는 예술 프로젝트 사진을 보셨나요?
영국의 다이애나비와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불행한 일로 사망하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 있을지 상상하며 예술작품으로 구현한 것인데요, 교통사고로 숨지지 않았다면 60세가 넘었을 다이애나비와 에이즈로 사망하지 않았다면 70세를 훌쩍 넘긴 풍채 좋은 노인이 되어있을 것 같은 프레디 머큐리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죠.
디지털 이미징은 포토샵을 이용해 사진을 왜곡한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많지만 아퍼 애쉴타스의 사진처럼 어떤 메시지를 담느냐에 따라 사진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인식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물론 보도사진의 영역에서 디지털이미징은 “조작”으로서 결코 용납될 수 없지만, 예술사진의 영역에서 보면 정확한 메시지가 담긴 작업은 새로운 시도이자 멋진 프로젝트라고 인정받고 있습니다.
제가 사진기자 초년병 때까지만 해도 사진이 직업인 사람과 고가의 수동 카메라를 소유한 취미사진가 정도만 사진을 찍을 뿐 진지한 관심을 두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나 수많은 사진을 찍고 보여주는 세상이 되었는데요, 사진을 잘 찍는다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2011년 영국 출신 야생동물 사진작가 데이비슨 레터는 인도네시아의 깊은 정글에서 희귀종인 검정 짧은꼬리원숭이를 촬영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며칠 동안 조용히 쫓아다니기만 하자, 그를 경계하던 원숭이들이 조금씩 마음의 빗장을 풀게 됩니다. 원숭이 무리 중 호기심 많은 젊은 수컷들이 사진 찍을 때마다 찰칵찰칵 소리를 내는 카메라에 관심을 나타내자 그는 원숭이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기 위해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카메라의 셔터에 긴 리모트컨트롤 케이블을 연결하여 바닥에 떨어뜨린 다음 자신은 카메라 뒤로 살짝 빠져 지켜보았습니다.
원숭이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점점 카메라 앞으로 다가왔고 리모트컨트롤 케이블을 눌러가며 수백 장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인류 역사상 원숭이가 촬영한 최초의 사진이 탄생하게 된 것이죠. 그중 노출과 초점이 완벽한 사진이 유명해지면서 야생의 원숭이에게 나루토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예전에는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것이 기술적인 것, 즉 노출과 초점이 잘 맞는 사진을 찍는 것을 의미했지만 이제는 기계가 좋아지면서 원숭이도 기술적으로 완벽한 사진을 찍는 것이 가능한 세상이 된 것이고요, 그러면서 좋은 사진에 대한 새로운 기준으로 찰나의 순간, 순간포착에 대한 개념이 중요하게 부각되었습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결정적인 순간으로 잘 알려진 사진의 대가인데요, 그가 말한 결정적 순간이란 화면 속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결정적인 타이밍에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 그 순간의 정수를 포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걸작 흑백 사진들을 보면 평범하고 지저분해 보이기까지 하는 도시의 풍경이 기하학적 아름다움으로 표현되며 훌륭한 예술사진으로 변모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말년에 “나도 도대체 어떻게 결정적인 순간을 사진으로 포착하는지 잘 모르겠다”라며 그 과정이 수수께끼라고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결정적 순간은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이다”라는 말을 덧붙였는데요, 사진의 프레임을 만들어놓고 피사체에 집중하며 기다리다 셔터를 누르면 결정적 순간이 포착된다는 말을 남겼죠.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2차 세계대전 후 주로 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암살당한 간디의 장례식을 기록하고, 공산당에 의해 국민당 정권이 무너지는 격동의 중국을 사진에 담기도 하며 결정적 순간을 많이 남겼는데요, 오늘날 예술사진으로 칭송받는 브레송 사진의 대부분은 사진기자의 관점에서 보도 용도로 촬영된 사진들입니다.
그가 말한 결정적 순간이란 단순히 멋진 한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기자로서 목도한 수많은 인간사의 드라마에 대한 이해가 현실과 마주치는 접점이었던 것입니다.
그에게 사진이란 피사체와 호흡하는 것이었고 실존하는 세상의 리듬을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가 정립한 결정적 순간이란 찰나의 순간처럼 눈앞에 나타나는 짧은 한순간이 아니고 세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러 기록한 순간이었습니다.
“먼저 세상과 대상에 대해 이해하라. 그리고 모든 준비를 하고 기다리다가 화면 속의 평범한 무엇들이 서로 어우러져서 최고의 조화를 이루는 순간을 포착하라”
그의 이야기를 인생에 대입해보면 인생의 기회를 계속 쫓아다니기에 앞서 지금 사는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마친 후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과 자신에 대해 바른 이해를 하고 기다리면 우리 앞에 몇 번이고 다시 기회가 나타난다는 것이죠.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어도 매일 새로운 기회가 다시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면서 오늘의 실패가 그렇게 두렵지만은 않게 되었습니다.
준비하고 기다리면 내일 또 다른 좋은 사진을 찍을 기회를 만날 것이기 때문이죠. 오늘 결정적인 순간을 놓쳤더라도 다시 셔터를 누를 힘과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지 결정적인 순간을 다시 기다려서 그 순간을 사진에 담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