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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의 언어는 종종 건조하다. 그러나 복지의 재원과 그 경제적 효과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결국 인간의 시간과 불안, 그리고 희망을 말하게 된다. 재원은 사회의 혈액이다. 그 피가 어디서 흘러와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그 사회가 무엇을 가치 있다고 믿는지, 누구를 동료 시민으로 품으려 하는지를 보게 된다.

 

  국가 재정의 첫 번째 얼굴은 일반 예산이다. 목적을 따로 박아 두지 않은 조세의 흐름이 의회에서 승인되어 국민 전체로 흘러간다. 이 경로의 미덕은 단순하다. 누진세라는 보편적 장치를 통해 이미 걷는 순간부터 재분배가 작동하고, 지출 단계에서도 특정 납부액과 급여액의 자물쇠를 걸지 않으니 보편주의로 가는 길이 열린다. 평등이라는 단어가 추상적 약속에 머물지 않고 서비스의 문턱과 대기 시간, 그리고 인간 대 인간의 대우에서 현실이 되기 쉬운 방식이다. 그러나 미덕에는 비용이 따른다. 정치적 재량과 책임이 커지는 만큼, 안정적 설계와 투명한 환류가 없으면 “좋은 의도”가 “나쁜 설계”를 가릴 위험이 커진다.

 

  다음 얼굴은 사회보험료, 곧 사회보장성 조세이다. 법은 보험 가입을 선택이 아니라 의무로 바꾸고, 우리는 이를 목적세라 부른다. 귀표식을 단 양처럼, 쓰임새가 태생부터 지정된 돈이다. 이 경로의 힘은 두 가지이다. 모든 사람이 강제로 참여하기 때문에 위험이 넓게 분산되고, 더 낸 사람이 더 받는다는 상응성이 권리의식을 낳는다. 그 권리의식이 제도의 정치적 지속 가능성을 떠받친다. 그러나 상응성은 때로 역진성의 그림자를 동반한다. 동일 비율의 보험료가 저소득층에게는 더 무겁게 느껴지고, 상한액이 있는 제도에서는 고소득층의 한계부담이 낮아진다. 게다가 적립이 아닌 부과 방식에서는 “내가 낸 것을 내가 받는다”는 직선이 실제 역사에서는 세대 간 이전의 곡선으로 바뀐다. 제도가 약속하는 권리와 인구 구조가 허락하는 가능성 사이를 정직하게 매개할 정치가 필요하다.

 

  또 다른 얼굴은 조세지출이다. 국가는 세금을 걷어 다시 나누기도 하지만, 때로는 애초에 덜 걷는 방식으로 복지를 만든다. 공제와 세액감면, 근로장려세제나 부의소득세 같은 장치는 “선택할 자유”를 개인의 지갑 속 현금으로 돌려놓는다. 그 자유는 소비자 주권을 살리고 시장의 정보를 촘촘히 불러오지만, 조세를 낼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는 공허하다. 덜 걷는 복지는 낼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유효하기 때문이다. 더 일할수록 지원이 줄어드는 구간에서는 노동의 추가수익이 희미해져, 선의를 갉아먹는 역설이 생긴다.

 

  공적 경로 밖에도 민간의 수로가 있다. 사용료와 본인부담은 남용을 줄이고 자기결정과 자존을 돕지만, 한 푼이 아쉬운 이들에게는 가장 작은 금액도 장벽이 된다. 기부는 시장의 실패와 국가의 경직성 사이를 메우는 제3의 길이다. 기부자는 자유롭게 실험하고 섬세한 욕구에 응답할 수 있다. 덕분에 다원사회는 제 살에 맞는 재단과 프로젝트를 갖추며, 때로는 국가보다 먼저 길을 연다. 하지만 선의는 불균등하다. 기부의 지도가 곧 복지의 지도가 되어버릴 때, 조용한 고통은 지도 밖으로 밀려난다. 기업복지는 인재를 붙들고 삶의 위험을 나누는 건강한 관행이 될 수 있지만, 일자리 바깥의 시민을 포괄하지는 못한다. 가족과 이웃의 비공식 돌봄은 빠르고 다정하며 종종 가장 효과적이지만, 그 다정함이 여성의 무급노동 위에 서거나 붕괴하는 가족을 더 망가뜨리는 경우도 냉정히 보아야 한다.

 

  이제 재정의 혈류가 경제의 장기와 근육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볼 차례이다. 복지의 첫 번째 경제적 얼굴은 재분배이다. 위에서 아래로의 수직 재분배와 같은 수평선상의 재분배가 공존한다. 세대 안에서의 이전과 세대 간의 이전도 각기 다른 역학을 가진다. 이 차이를 알지 못하면 논쟁은 늘 공허하다. “내 돈을 왜?”라는 질문과 “우리 모두의 위험은?”이라는 질문은 서로 다른 시간축과 회계틀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저축에 대해서도 하나의 답은 없다. 강제보험료는 현재의 가처분소득을 줄여 민간저축을 깎는 듯 보이지만, 적립식 연금은 오히려 장기저축 습관을 강화한다. 부과식 연금은 조기퇴직의 유인을 넓혀 별도의 노후저축을 자극할 수도 있고, “국가가 준다”는 기대 아래 사적 저축을 대체할 수도 있다. 변수는 제도 설계와 생애주기의 위치, 가구의 신용제약과 문화적 시간선호이다. 경제학의 답은 언제나 “그때, 그 사람, 그 제도에 달려 있다”이다.

 

  유효수요와 물가도 비슷한 맥락이다. 재분배는 저소득층의 한계소비성향을 높여 경기를 받치지만, 장기적으로 수급자 규모와 징수자 규모가 엇갈리면 같은 장치가 과열을 낳을 수도 있다. 케인즈가 말한 자동안정장치로서의 실업급여는 이 진폭을 줄이는 가장 세련된 메커니즘이다. 호황에는 보험료가 유효수요를 흡수하고, 불황에는 급여가 바닥을 떠받친다. 정치의 의지가 아니라 제도의 관성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특히 믿을 만하다.

 

  투자와 성장에서도 양면이 나타난다. 기업의 보험료 부담은 단기적으로 잉여와 투자를 압박하지만, 충분히 큰 연기금은 자본시장의 기초체력을 키우고, 건강·교육·돌봄에 대한 안정적 투자는 인적자본을 축적한다. 반대로 부과식 제도의 조기퇴직 유인, 저성과 운용, 주식시장의 변동성은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어느 쪽이 지배적인가를 가르는 것은 교과서의 이념이 아니라 운용의 질, 거버넌스의 투명성, 위험을 나누는 기술이다.

 

  노동공급에서도 믿음과 경고가 함께 간다. 공교육과 공중보건, 직업훈련은 노동의 양과 질을 모두 높이는 가장 강력한 성장정책이다. 동시에, 모든 것이 현금이거나 “일하면 끊기는” 급여 구조는 빈곤함정과 실업함정을 키운다. 그래서 근로연계 복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은 도덕적 설교가 아니라 정밀한 설계이다. 벌어들인 추가 소득이 일정 구간에서 한 푼도 줄어들지 않게 하는 점감 구조, 일을 시작하는 순간 혜택이 사라지지 않게 하는 단계적 페이드아웃, 저임금의 초과부가가치가 가처분소득에 명확히 찍히게 하는 수학. 인간은 도덕적이기보다 합리적일 때가 많다. 제도는 그 합리성의 길을 막지 않아야 한다.

 

  가치재의 논의는 복지의 철학을 드러낸다. 안전벨트처럼 “알지만 덜 쓰는” 재화를 국가가 강제하거나 보조하는 일은 자유의 축소가 아니라 자유의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공교육, 공공임대, 오지 교통과 정보망은 시장의 결함을 덮는 단순 보조금이 아니라 시민권의 기반시설이다. 온정주의를 오용하면 시민을 아이로 만들지만, 적정한 수준의 ‘부모적 간섭’은 시민을 더 자유롭게 만든다. 배움과 이동, 주거의 안정이 없으면 정치적 자유도 사상누각이 된다.

 

  마지막으로 도덕적 해이와 X-비능률의 그림자를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보험은 본성상 위험을 안일하게 만들 수 있고, 독점적 관료조직은 경쟁의 압력이 없는 만큼 느슨해지기 쉽다. 그러나 처방은 전면 민영화가 아니다. 그 길은 가장 약한 사람을 시장의 칼날 위에 홀로 세워두기 십상이다. 현명한 처방은 정밀한 타깃팅, 합리적인 본인부담의 완만한 경사, 적극적 구직요건 같은 행태적 설계, 그리고 무엇보다 성과에 기반한 공개평가와 환류이다. 국가는 제도에 시장의 정보와 시민사회의 감시를 연결해 덩치는 키우되 살을 빼고, 의도를 지키되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

 

  복지는 숫자의 기술이자 인간의 예술이다. 누구에게 얼마나,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전할 것인가의 선택은 결국 우리가 어떤 사회가 되려 하는지의 선언이다. “나는 너의 위험을 나의 위험으로 여긴다.” 이 간단한 문장을 재정과 제도로 번역하는 일, 그것이 복지국가의 품격이며 경제의 지속 가능성이다. 피가 고이지 않고 숨이 가빠지지 않는 사회, 그 사회의 설계도는 언제나 보이는 곳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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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스배 3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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