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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는 늘 위험으로 가득하다. 우리가 위험이라 부르는 것들은 대개 사건처럼 다가오지만, 실은 구조의 그림자다. 베버리지가 한때 다섯 가지 악이라 지목했던 빈곤과 질병, 무지와 불결, 나태는 시대의 먼지가 쌓여 생긴 고질들이다.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사라진 적이 없다. 다만 그 위에 새로운 먼지가 내려앉았을 뿐이다. 여성의 일과 돌봄이 겹쳐지는 지점, 늙어감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의 리듬이 되는 사회, 일자리를 가져도 가난이 지워지지 않는 역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세계의 문이 닫히는 팬데믹과 매해 더워지는 지구. 위험은 이제 생활의 날씨 같다. 누구의 잘잘못과 무관하게 구름이 끼고 비가 온다.

 

  울리히 벡이 말했듯, 위험은 민주적이면서도 계급적이다. 누구에게도 닥칠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같은 방법으로 닥치지는 않는다. 같은 비라도 사는 곳의 지붕과 배수에 따라 피해가 다르다. 원격으로 일할 수 있던 이에게 팬데믹은 시간표의 수정이었지만, 몸으로 일해야 하던 이에게 그것은 생업의 중단이었고, 문서에 이름조차 남기기 어려운 이주노동자에게는 말 그대로 ‘잊힘’이었다. 바우만은 재난이 불평등하다고 말했다. 그 문장은 지극히 사실적이다. 부는 위로 올라가 층을 이루고, 위험은 아래로 가라앉아 퇴적층을 만든다.

 

  그래서 사회는 위험을 ‘개인의 불운’으로 내버려두지 않기 위해 장치를 만든다. 그 장치가 사회보장이다. 1935년 미국의 사회보장법이 이 말을 공식화했을 때, 그것은 약속이자 요청이었다. 국가가 위험을 ‘함께’ 감당해 보겠다는 약속, 시민이 공동의 안전망을 위해 기꺼이 짐을 나누자는 요청. 전쟁이 끝난 뒤 베버리지의 보고서와 프랑스의 라로크 계획은 이 약속과 요청을 제도로 번역했다. 보장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는 것을, 즉 보장이란 ‘보장한다’는 움직임 속에서만 진짜가 된다는 것을 그들은 알았다.

 

  한국의 법은 사회보장을 사회보험과 공공부조, 사회서비스로 정리한다. 깔끔한 분류다. 다만 분류가 끝이 될 때 문제가 생긴다. 사회복지를 구호의 언어로만 좁히면, 위험은 다시 개인에게 되돌아간다. 사회복지는 원칙의 이름이다. 권리로서의 안전과 존엄을 어떻게 공동의 기술로 구현할 것인가—그 물음이 꺼지지 않도록 제도가 존재한다.

 

  현금이냐 현물이냐 하는 오래된 논쟁도 사실은 인간에 대한 관점의 문제다. 현금은 선택의 자유를 회복시키고, 시장의 효율을 빌려 사람에게 맞춤의 여지를 준다. 무엇보다 낙인을 지운다. 같은 계산대에서 같은 지폐로 값을 치를 때, 우리는 더 이상 ‘수혜자’로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자유가 항상 선한 결정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외부효과가 크거나, 정보의 비대칭이 심하거나, 선택의 역량이 제약된 영역—의료와 돌봄, 교육, 아동보호—에서는 현물이 품질과 접근성의 하한선을 지킨다. 바우처는 그 사이의 절충이다. 용도는 제한하되, 선택은 남겨둔다. 제도는 언제나 혼합이다. 낙인의 비용, 행정의 비용, 누수의 비용, 그리고 존엄의 비용을 모두 더해 가장 낮은 합을 만드는 쪽으로 배합해야 한다.

 

  문제는 늘 재원에서 덜컥 걸린다. 그러나 재정은 단순한 산술이 아니다. 정치의 연산이다. 1970년대 이후의 역사도 그것을 증명한다. 한 나라는 복지를 축소하고 시장의 손에 더 많은 권한을 넘겼고, 다른 나라는 보편적 틀을 유지한 채 세입과 세출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결과의 온도는 달랐다. 위기는 지출의 과잉이 아니라 선택의 산물이다. “덜 쓰자”는 가장 쉬운 문장이고, 대개 가장 비싼 대가를 부른다. 안전망을 얇게 만들수록 위험은 더 비싸게 돌아온다.

 

  세금을 더 걷는 일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그래서 순서가 중요하다. 먼저 공정성을 복원한다. 감면과 특혜의 숲을 정리하고, 사각지대를 줄인다. 이어 추가 세입을 보편적 서비스—모든 이가 체감할 수 있는 아동, 기본의료, 기초소득보완—에 투명하게 투입한다. “더 내면 더 안전해진다”는 감각이 자리 잡을 때, 소득세의 누진을 조금 더 가파르게 만들 수 있다. 고용주의 사회보험 분담을 현실화하고, 소비세의 역진성은 환급과 공공요금 연동 같은 장치로 상쇄한다. 세목의 목록이 아니라, 신뢰의 계단을 설계하는 일. 재정의 길은 언제나 설득의 길과 겹쳐 있다.

 

  중앙과 지방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권리는 전국에서 같아야 하지만, 실행은 지역마다 달라야 한다. 같은 휠체어 경사로가 산골과 대도시에서 같은 의미일 수는 없다. 중앙은 권리의 최저선을 보장하고, 지방은 생활의 맥락에 맞춰 조합을 바꾼다. 그 대신 성과와 품질, 예산의 흐름은 납세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공개된다. 복지는 숫자의 보고서가 아니라, 신뢰의 연대기여야 한다.

 

  끝내 남는 것은 질문의 태도다. 우리는 위험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불운, 실패, 무능이라는 언어로 부를 때, 사회는 서늘해진다. 구조, 운, 생애주기의 요철이라는 언어를 사용할 때, 공동체는 개입할 자리를 찾는다. 복지는 연민이 아니라 인프라다. 내일의 나에게 닥칠 수 있는 위험을, 오늘의 타자 이름으로 미리 엮어 두는 그물.

 

  좋은 사회는 완벽한 안전을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떨어졌을 때 다시 올라올 사다리를 놓아둔다. 사다리는 누구에게나 같은 높이에서 시작하지만, 올라오는 방법은 각자 다르다. 그래서 제도는 단단해야 하고, 운영은 유연해야 한다. 설계는 차갑게, 결과는 따뜻하게—이간의 균형을 잃지 않는 한, 사회보장은 제도가 아니라 문화가 된다. 그리고 문화가 된 보장은, 위험의 날씨 속에서도 우리를 다시 일상의 기후로 데려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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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스배 3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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